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자도빌 전투 (문단 편집) == 그 후 == 자도빌 전투에 참가한 35대대 A중대 아일랜드군은 그야말로 용전분투하여 압도적인 전력의 다수의 적을 상대로 큰 전과를 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항복해서 패전하자 아일랜드군은 그들의 활약상을 은폐했다. 서방 열강들 역시 모토르 작전에서 자기들의 치부가 노출될까봐 자도빌의 아일랜드군에게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다. 고국으로 돌아온 A중대 병사들은 자도빌의 바보들(Jadotville Jack)로 불리며 조롱의 대상이 되었고 퀸란 소령은 그들에게 훈장을 줄 것을 제안했으나 묵살당했다. 이후 퀸란 소령은 아일랜드군에서 대령까지 승진했으나 자도빌의 오명은 그가 1997년 죽을때까지 계속 따라다녔다. 로제 풀크는 그야말로 전쟁이 천직이었는지, 이후에도 계속된 각지의 분쟁과 내전에 참가했다. 예멘, 나이지리아 등지에서 용병 활동을 했고 북예멘에서는 [[MI6]]를 지원했다. 수많은 작전으로 명성을 쌓아 올려 '''천 개의 목숨을 가진 사나이'''로 불리는 등, [[프랑스 외인부대]]의 살아있는 전설 취급을 받다가 2011년 프랑스 니스에서 자연사했다. 촘베는 승전했으나 이후 유엔 평화유지군이 스웨덴 제트기 [[J 29]]를 대거 반입하여 [[푸가 마지스테르]] 훈련기를 격추시키고 콩고군과 합세하여 계속 공세를 하여 결국 항복하였다. 카탕가국도 패망하여 콩고 정부에 다시 [[병합]] 되었다. 이후 그는 스페인으로 망명 갔으나 1964년 연합정부의 혼란이 극에 달하자 다시 콩고로 복귀하여 총리가 되었다. 그러나 친외세적인 정책을 펼치고 부패하여 결국 [[조제프 카사부부|카사부부]] 대통령에게 해임되었다. 1965년 서방의 지원을 받은 [[모부투 세세 세코]]가 쿠데타를 일으켜 카사부부를 축출하고 촘베는 다시 스페인으로 망명하였다. 1967년 프랑스 정보부 [[DGSE]]의 전신인 SDECE에게 납치되어 알제리로 끌려갔고[* 왜 도와주던 프랑스가 뒷통수를 쳤나면 1967년에 카탕가주에서 또 반란이 일어났는데 서방은 미국을 중심으로 이미 모부투를 지원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콩고의 분열을 바라지 않았던 서방 열강은 반란의 구심점이었던 촘베를 그냥 팽해버린것이다.] 감옥에 있다가 가택연금 상태에서 1969년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아일랜드군 참전용사들은 지속적인 명예 회복 투쟁을 벌였다. 결국 2005년 아일랜드 정부가 처음으로 이들의 공로를 인정했고 퀸란 소령의 명예도 회복되었으며 2006년에는 전원에게 훈장이 수여되었다. 그들을 기리는 의미에서 영화 [[자도빌 포위작전]]이 개봉되어 좋은 평가를 받았다. [[분류:1961년 전투]][[분류:지상전]][[분류:유엔군]][[분류:아일랜드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